“나는 누군가의 마음에 머무르지 않아도, 내 안에 머무를 줄 아는 토끼가 되고 싶어.”

《루아, 기다리지 않기로 마음먹은 날》

“나는 누군가의 마음에
머무르지 않아도,
내 안에 머무를 줄 아는 토끼가 되고 싶어.”

마음숲이라는 조용한 곳에
‘루아’라는 회색빛 토끼가 살고 있었어요.

루아는 작고 느릿하고, 말이 많진 않았지만
마음이 참 따뜻한 토끼였어요.

조용한 아침, 햇살이 나뭇잎을 통과해 포근하게 내려앉은 순간,
루아는 차 한 잔을 손에 들고 속삭였어요.

마음숲이라는 조용한 곳에
‘루아’라는 회색빛 토끼가 살고 있었어요.
루아는 작고 느릿하고, 말이 많진 않았지만
마음이 참 따뜻한 토끼였어요.

어느 날, 숲으로 반짝이는 여우 한 마리가 들어왔어요.

햇살처럼 빛나고, 바람처럼 자유로웠죠.

루아는 단번에 여우가 좋아졌어요.

아주 조심스럽게, 아주 서툴게.
하지만 정말 진심으로.

네가 반짝이며 나타났을 때,
나는 한눈에 너를 알아봤어.

햇살 같고, 바람 같고,
조금은 닿지 않을 것 같은 너.

그래서 루아는 매일 마음을 조금씩 꺼내놓았어요.

“오늘은 도토리빵을 구웠어. 너 생각이 나서.”
“저기 저 별, 너랑 닮았어. 은근하게 빛나는 거.”
“나는 네 옆에 있을 때, 내 숨소리까지 따뜻해져.”

작고 소박한 마음을 꺼내는 건
언제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어요.

여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따뜻한 눈빛에 루아는 마음이 몽글몽글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우의 발걸음은 점점 멀어졌고,
그 눈빛은 자꾸 숲 어딘가를 향해 있었어요.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조용히 울고 있었어.

네가 멀어지는 걸 느끼면서도
애써 웃는 날들이 있었거든.
루아는 그게 슬펐지만, 괜찮은 척했어요.

말하면 여우가 떠날까 봐.
그래서 더 웃고, 더 먼저 다가갔지만—
마음은 점점 아파졌어요.
자기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았죠.

그러던 어느 저녁,
루아는 마음숲 가장 깊숙한 곳,
조용한 연못 앞에 혼자 앉아
자신에게 조용히 말했어요.

“나는 누군가의 마음에 머무르지 않아도,
내 안에 머무를 줄 아는 토끼가 되고 싶어.”

그 말은 내 안에서
작은 따뜻함이 되어 퍼졌어요.

그 말이 연못물에 잔잔히 퍼지자
하늘의 별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마음숲의 바람이 다정하게 루아의 귀를 감쌌어요.

별도 바람도 아무 말 없이
나의 편이 되어주었어요.

그 조용한 위로가
무너진 나를 다시 안아주었어요.

그 순간부터
루아의 회색빛 털은 서서히 빛나기 시작했어요.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않아도,
스스로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그 빛이었어요.

이제 루아는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웃지 않고,
슬픈 날엔 슬프다고 솔직히 말해요.
진심을 내려놓았을 때
내 곁에 조용히 피어나는 온기들.

이제 누군가의 사랑보다,
나의 평화가 더 중요해졌어요.

그러자 이상하게도
작은 새, 수줍은 고슴도치, 말 없는 사슴까지
하나둘 루아 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제야 루아는 알게 되었어요.

“진짜 사랑은, 내가 나를 사랑할 때
세상도 나를 진심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걸.”

그 후로도 루아는
마음숲의 작은 오두막에서
매일 따뜻한 차 한 잔을 끓이고 있어요.

누군가를 기다리지도, 붙잡지도 않지만

그저 조용히, 다정하게—

자신의 안에 머무르는 연습을 계속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 마리 새가
바람결에 이렇게 속삭였어요.

“말없이 웃는 루아를 보면, 나도 나를 안아주고 싶어져.”

등장인물 소개

루아
마음숲에 사는 회색빛 토끼.
조용하고 섬세한 성격을 가졌지만,
사랑 앞에 누구보다 용기 있는 존재.
누군가의 시선 속에 있던 자신을 떠나,
이제는 자신의 마음 안에 조용히 머무는 법을 배워간다.

여우
마음숲에 잠시 들렀다 떠나는 반짝이는 존재.
자유롭고 환한 매력을 가졌지만, 오래 머무르지는 않는다.
루아의 진심을 다 품지 못했지만,
루아가 자기 자신을 찾는 계기가 되어준다.

작가의 말 – 김보정

이 이야기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마음 한편에 품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나를 잃어가며 사랑했던 기억,
그리고 다시 나를 사랑하게 된 다짐.
“사랑은 나를 잃는 게 아니라,
나를 더 아끼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루아의 조용한 결심이
당신의 하루 끝에도 작은 숨결이 되기를 바랍니다.